한달만에 본가로 D life

그래도 한달에 한번은 가야지 라는 약간의 의무감으로 갔다 본가가 이사를 한 뒤로 영 우리집같은 느낌이 안든다 추석내내 있어봤는데도 남의 집 같기만 하다 얼마나 오래 살아야 우리집 같을까

내년에 본가에 들어가 살 예정인데 나와서 오년을 산 내가 본가살이?가 가능할지 모르겠다 화장실에서 옷입고 나와야 하는 거 정말 너무 불편한데 가운을 하나 장만하면 해결되려나

짬내서 쇼핑도 했다 한겨울 아우터를 전부터 사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드디어 마음에 쏙드는 걸 발견해서 살 수 있었다 따땃하고 포근한 것이 착하고 감기는 느낌이 참 좋다 올 겨울 든든하다

헛바람이 들었다 빠졌을 뿐인데 진심이 농락당하는 기분이 들어 내가 왜이러나 싶다 발닦고 잠이나 자자 진심은 무슨놈의 진심

대전에도 눈이 펑펑왔으면 좋겠다

환자 vs 치과의사 누가 갑인가? 글들

갑을 관계란 계약서상의 계약자들을 간단하게 지칭하는 단어지만 관용적으로는 ''을 상대적으로 지위가 높은 계약자를 지칭하고 ''을 상대적으로 지위가 낮은 계약자를 말한다. 을에 대한 대기업의 횡포가 공분을 일으키며 요즘 을 구하기담론으로 사회가 들끓고 있다. 이를 치과에도 적용시켜보자. 환자와 치과의사의 관계에 있어서는 누가 갑일까. 환자의 생살여탈권만 두고 보면 치과의사가 갑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치과의 경쟁이 심화된 요즘 환자의 지위가 치과의사보다 더 높아진 것 같은 느낌을 받곤 한다.

지난 주 모교의 치과병원에 관찰 실습을 갔었을 때 상당히 놀란 일이 있었다. 다수의 환자들이 진료비 상담을 하면서 견적이 어떻게 나오느냐 견적서를 만들어 줄 수 있느냐 라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의료 행위가 일반 재화처럼 사고 팔아지는 단순한 서비스로 여겨지는 것 같아 속상한 기분이 들었다. 치과가 넘쳐나는 오늘의 환자들은 치과 진료를 자신의 입맛대로 받을 수 있는 소위 갑질이 가능한 그런 곳이 되어 버린 것일까.

환자가 스스로 의료를 소비하는 '소비자'로 인식하는 경향이 짙어지면서 치과 진료에서도 소비자는 왕이다며 횡포를 부리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진료하는 의사에게 '아저씨'라는 호칭을 사용하기도 하며 어떤 환자는 진료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돈을 지불하지 않고 그냥 가기도 한다. 과거에는 의사의 말에 순수히 따르는 환자가 대다수였지만 환자들에게 아무리 설명을 해도 이런 검사가 뭐가 필요하냐’ ‘발치를 해 달라는 막무가내식 자가진단과 처방 요구가 종종 나온다. 환자는 통상적인 진료에 따르는 사소한 불편도 돌팔이 치과의사 탓이며, 본인의 관리 부족으로 재치료가 필요할 경우도 치과의사 책임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진료비는 저렴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서비스업에서는 손님이 인 것이 맞다. 하지만 그것이 치과에도 적용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뛰어난 의술이 때론 권력을 행사할 수 있을 만큼의 위상을 보장해 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공급과 수요의 불균형 때문에 일어나는 특수한 상황일 뿐 보편적인 상황은 단연코 아니다. 본질적으로 치과 진료는 구강 건강을 다루는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단순하게 사고 팔아지는 서비스업과 같이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치과의사는 전문지식을 갖춘 의료인으로서 비전문인인 환자와의 관계에서 바른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치료를 같이 고민하고 고통을 공감할 동반자적 관계여야 한다. 이는 절대 갑과 을의 관계가 되어서는 안 되며 갑을 관계를 자처하는 이상 신뢰는 깨질 수밖에 없다. 환자 스스로가 자신을 고객이나 소비자로 인식한다면 동반자적 관계를 포기하고 계약 관계를 자처하는 셈이 되어버리며 결국 그러한 신뢰의 상실은 환자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구강 건강을 다루는 치과의사들은 이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며 그러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환자를 귀히 여기며 참다운 의술을 펼치고자 노력할 필요가 있다.




멍청이는 멍청이인 채로 D life

쉬는날이였다 더 잘까 일어날까 졸립긴 한데 더 자면 밤에 잠이 안 와 고생할 것이 뻔하다 기지개를 켜고 뒤척뒤척하다 핸드폰을 찾았다 밤사이 온 연락은 없다

그 다음은 SNS 타임이다 이리저리 보아도 크게 흥미로운 것이 없다 그래도 일어나기는 귀찮다 유튜브 피드를 쭉 훑어본다 브이로그도 보고 요리 채널도 보고 삼십분이나 놀다 배가 고파졌다

뭐먹지 오늘 뭐하지 걸을까 목욕이나 갈까 생각을 해봐도 딱히 이거다 싶은 것이 없다 멍청이 상태다 커피를 내리고 생존을 위해 사과를 우걱우걱 먹었다 다시 생각 한다 나 오늘 뭐하지

읽던 소설책이 있었지 하고 생각났다 라플라스 마녀가 되는 수술의 성공률이 100퍼센트고 비용이 리즈너블하다면 나는 받을까? 아니? 나는 멍청이로 살래. 아무도 물어보지 않은 질문에 답을 했다 듣는 사람은 없다

티비를 돌리다보니 맥주가 마시고 싶어졌다 막 튀긴 감자튀김에 생맥주 먹고 싶다~~ 하는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저녁에 영어학원 가야하는데 어떻게 하지

시간은 네시를 향해 느릿느릿 가고 있었다 학원 갈 시간은 여덟시 반. 네시간이면 충분하다 나는 서둘러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집앞 수제버거 집으로 갔다

나를 반긴다 처음오셨냐 묻더니 메뉴를 설명한다 어, 저, 사이드 메뉴에 맥주 마시려고 하는데 될까요? 물으니 기분나쁜 기색 없이 사이드 인기메뉴를 알려주신다 친절하다 맥주 무료 쿠폰을 두개나 주시고도 모자라 내가 주문한 맥주값도 안받으신단다 오 마이 갓! 여기가 천국인가 싶었다

한적한 거리를 보며 무한리필되는 맥주를 두잔 정도 마시고 나왔다 사장님은 천사이신게 분명하다 다음에 햄버거 먹으러 와야지하고 다짐했다

나는 왕소심이이다 호주에서 어학원 다닐때도 말 한마디 부끄러워했다 영어로 말하는 일은 얼마나 오글거리는지 상대가 못 알아들으면 쥐구멍을 찾기 바쁘다 그러던 내가 아줌마 스타일로 되는 대로 말하고 있다 좋은 변화다

붙임성이 좋은 아주머니들의 오지랖으로 영어를 하면 금방 늘 것 같다 요즘의 내가 그런 것 같다 아무래도 수업이 따라갈만하고 여유가 있으니 나오는 태도겠지 버겁고 어려우면 나는 입을 꽉 다물어 버린다

나는 머글로 살 팔자인 것 같다 똑똑이가 많은 세상은 나를 압도시킨다 물론 똑똑이들의 얘기는 언제나 흥미롭지만 어쩐지 위축되는 느낌이 들면 여지없이 우울한 구름이 끼어버리곤 하는 것이다 그래도 라플라스 마녀가 되는 수술은 받고 싶지 않다 나는 멍청이인 채 사는 것이 내 체질에 맞는 듯 하다


셀프 보릿고개 D life

껍데기같은 하루하루가 무심히 지나가고 있다 혼자가 된지 시간이 꽤 흘렀고 이제 괜찮은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약속이 없는 주말과 혼자 보내는 긴긴 시간들, 어느때보다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날 보고 간 친구는 혼자서 사색을 즐기는 내가 멋져보인다 한다 현실은 좀 후진 것 같은 느낌인데 그리 봐줘서 고마웠다

엄마의 여행에 찬조를 하고 나니 이번 달 생활비가 빠듯하다 엄마가 좋아라한 것 만으로 이 빠듯함마저 행복이다 없으면 없는대로 잘 살아지고 금방 12월이 올테니까 문제없다

생활비 아끼기에는 식비만한 것이 없다 그래도 건강하게 먹고 싶은 마음에 제일 싼 계란 한판을 사고(짱든든함) 송상근 야채라 써있는 초록색 풀을 샀는데 검색해봐도 조리법이 나오질 않아 직원한테 물어보니 송상근씨가 재배한 상추라고 했다

웃겼다 나는 종종 처음보는 야채도 검색해서 이것저것 만들어보곤 하는데 송상근 이라니 뿌리채소인가 싶었고 검색까지 했다니 완전 코미디다 송상근씨가 만든 상추는 아주 부드럽고 신선하고 달다 잘먹을게요

궁상떨고 있는 나를 알면 엄마는 속상해하실지도 모르지만 일단 내 속이 행복하다 효도 할 생각, 여행 갈 생각하면 아껴 생활하는 것마저 보상이 빵빵한 퀘스트 하는 것 같고 재미지다 나의 보릿고개 화이팅이다 쿄쿄



나의 아버지와 나 글들

대부분의 베이비붐 세대의 아버지가 그러하듯 우리 아버지 또한 다정한 말 한마디 하는 법이 없었고 엄마는 나더러 아빠랑 똑같다고 무뚝뚝하다며 서운해 하곤 하셨다

내가 중학생때 두살 터울의 언니는 곧잘 아버지께 등교길에 차를 얻어 타고 용돈을 받았다 엄마는 종종 "너도 아빠한테 용돈 좀 달라고 해~" 하셨지만 나는 "안받고 말지.." 했다는 일화는 아직까지 종종 얘기하신다

언니는 애교가 많았고 누가 봐도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태가 났다 남동생은 존재 자체가 축복이였고 날 뱄던 엄마는 무지하게 우울하셨다고 했다 나의 유년시절은 혼자서 무럭무럭 자란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어딘가 감정이 메말라있는 듯 했다

부모님이 자랑할만한 학교의 대학생이 되고 그 뿌듯함에 취해 신입생 시절을 보냈다 그해 겨울에 우연히 탔던 아버지의 차안에 먹다 남은 과일과 비워져 있던 산사춘 병을 발견하고는 형언할 수 없는 삶의 무게를 느끼고 말았다

힘들어하는 기색하나 없으셨다 그저 묵묵하게 아침이면 제일 먼저 일어나 부리나케 나가셨고 모두가 잠든 한밤중에 살금살금 들어와 주무셨다 나는 주말이면 거실에 계시는 아버지가 어색해 티비를 보다 방에 들어가곤 했었다

금전적 효도를 목전에 두고 취업에 번번히 실패해 다른 분야에 도전하고 싶다 했을때도 아버지는 묵묵히 나의 길을 응원해주셨다 가계가 넉넉지 않았음에도 끝까지 대학원 학비를 대주셨다

그 마음을 갚을 길이 없다 갑자기 살가운 딸노릇을 하자니 온몸이 돌처럼 굳어지는 느낌이다 나에게 아홉개의 향이 있다면 그 중 하나를 써서 1998년으로 돌아가 아버지 차를 얻어 타고 용돈 좀 달라고 애교를 부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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